(2부에 이어)

대망의 서민 맥주 1위는 바로, 스파이츠 골드 메달 에일 – Speight’s Gold Medal Ale.

병이 다른 두 맥주에 비해 살짝 짧다.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때문에 병이 굉장히 힙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짜임새 있고 이쁜 로고는 덤. 파란색과 주황색, 금색이 굉장히 잘 조화되어 있다. 1800년도에 세워져 아마도 가장 오래된 뉴질랜드 맥주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감각을 잘 유지하고 있는 편. 오히려 투이가 약간 아재 느낌이 난다면 스파이츠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것 같은 그런 이미지. 남섬에서 태어나 깊이 뿌리 박힌 남섬에 대한 자부심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스파이츠 골드 메달 에일은 가볍고 경쾌한 뉴질랜드 맥주의 정점이자 몸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사실 꼭 맥주뿐만이 아니라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쇼비뇽 블랑 등의 와인에도 적용이 되는 걸 보니 분명히 남섬 어딘가에는 맛난 물이 콸콸콸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특히 남섬 술들이 이렇게 맛있는 걸 보면. 맛이랄 것은 그닥 없고, 사실 맛이라는 게 그닥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질 만큼 탄산이 압도적인 매력을 펼친다. 이에 비한다면 한국의 라거 삼총사는 눅눅하게 젖은 택배상자나 다름 없어 반드시 한국에서 누가 왔을 때에는 뉴질랜드 라거를 대표해서 꼭 권하곤 한다. 이토록 얇고 풍성한 탄산알이 저 높은 곳에서 톡톡 터지는 것을 보면 마치 비눗방울이 저 높은 상공까지 흘렁흘렁 올라가는 것을 보는 양 스릴감마저 느껴지는데, 여기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건, 그래도 어디까지나 이건 서민 맥주 삼총사 사이에서 그렇다는 것이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기를. 잘 어울리는 날씨는 햇빛 쨍쨍한 오클랜드 여름의 낮, 산과 물을 막론한 야외 그 어딘가.

그리고 이렇게 끝내기가 아쉬워 개인적으로 완소하는 다른 서민 맥주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위의 세 맥주에 비해서는 조금 덜 알려졌지만 아마도 서민 맥주를 열 가지로 확대한다면 반드시 들어갈 맥주로 그 이름은 와이카토 드라우트.

와이카토는 북섬에 위치한 지역으로 오클랜드 지역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데, 편의상 한국의 경기도 혹은 충청도 정도로 보면 무난할 듯 하다. 왠지 모르게 와이카토는 서쪽에 해변이 펼쳐져 있지만 뉴질랜드의 다른 지방들에 비해 평지가 많아 따뜻하고 포근한 이미지를 주는데, 바로 이 와이카토의 지역 맥주가 바로 와이카토 드라우트인 셈이다. 이 맥주를 처음 마시게 된 계기는 코로만델(Coromandel)이라는 곳을 여행하면서였는데, 관광을 마치고 숙소를 잡은 작은 동네 술 가게에 들어가 맥주를 쇼핑하던 차였다. 와이카토 지방을 처음 찾은 터라 이 지역에 대한 호기심이 극에 달해 있을 때였고, 냉장고에서 와이카토 드라우트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한 건 했다는 기분에 맥주를 들고 가게를 보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이게 이 지역의 유명한 맥주인가요, 물었던 것이다. 딴에는 이 지역에 대해 많이 알고 싶었고, 그런 내 마음을 이 키위 할머니가 알아줬으면 하는 반면에.

“그건 왜 묻는데?”

반면에 돌아온 대답은 저렇게 차가웠다. 굳이 이 지역 맥주를 알아서 무엇하려고 그러느냐는 말투. 오클랜드에서 온 관광객인데 와이카토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그렇다고 설명을 하자 그제서야 조금 느슨해진 할머니. 이번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냥 스파이츠 (골드 메달 에일) 마시슈. 그거는 맛없어.”

지나치게 솔직한 할머니의 대답 때문인가, 오히려 와이카토 드라우트에 더 호기심이 생긴 나는 병을 내려놓고 박스 채로 와이카토 드라우트를 구매하고 코로만델 여행 내내 그것을 입에 물고 있었다. 할머니의 말과는 정반대로 너무나도 매력적인 맥주였던 것이다.

와이카토 드라우트 – Waikato Draught. 굉장히 촌스러운 짙은 초록색 로고가 특징이다. 윌리라는 이름의 웨이터 캐릭터를 마스코트로 사용하고 있는데 촌스럽고 짙은 초록색 로고와 어우러져 더 축축 처져 보이는 콜라보를 완성한다. 위키피디아에 검색하면 1920년대에 처음 주조된 맥주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현재는 스파이츠와 같은 라이언 브루어리에 인수되었음을 알 수 있으나 공식 홈페이지도 없고 정보도 미약하여 사실 정확히 모르겠다. 관심도 없는 모양이다.

드라우트 비어라고 이름 지어 있으나 병에 담겨 있으니 마케팅용일 뿐일 것이고, 라거인지 에일인지 전혀 알 수가 없으나 가격을 고려하였을 때 라거임으로 추정된다. 병 전면에는 쓴 맥주 / 강한 맛(Bitter Beer / Strong Taste)이라고 쓰여있지만 실제로 맛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탄산알이 굉장히 적은 것이 특징인데, 탄산 한 스푼 넣어야 할 것을 실수로 반 스푼만 넣었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밍밍한 것이 특징이다. 탄산을 다 스파이츠 골드 메달 에일에 몰아줬나 싶을 정도로. 더군다나 씁쓸하다는 맛은 투이 IPA에 비교하면 애들 장난 수준. 물에 탄산 탄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려고 하는 찰나에 아차차, 그제서야 맥주스러운 맛이 나 맥주야 하며 슬그머니 기어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매력적이다. 일단 한잔 한잔이 크게 특징이 없으니 쉴 새 없이 들어간다. 탄산이 적어서 그런가 상대적으로 취하는 느낌도 덜할 뿐 아니라, 그닥 챙겨서 맛봐야 하는 것이 급격히 없음으로 인해 모순적으로 다른 느낌으로서의 좋은 목넘김을 완성하는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 하루 스물 네 시간 내내 맥주만 마시다가 보리차 한잔을 마실 때의 느낌이랄까. 베란다에 앉아 벌컥벌컥 마시고 창문을 바라보면 사람 하나 없고, 시계를 봐도 아직 저녁시간을 한참 멀은 오후 세시 반쯤의 맥주로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적으로 번잡한 오클랜드를 떠나 한가하고 온순한 와이카토를 여행하면서였는지는 몰라도 다음에 내가 와이카토에 다시 간다면 고민하지 않고 꼭 마셔야 하는 맥주 1순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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