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가 대세였던 90년대, 여행이나 졸업식 같은 가족행사가 있을 때면 부모님은 빠지지 않고 자동 카메라를 챙기셨다. 아버지를 따라 사진관에 가서 필름을 사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노란색 상자에는 총천연색으로 박혀있는 코닥의 로고가 있었고, 24방 짜리니, 36방짜리니 같은 말들이 아버지와 사진관 주인 사이를 오가곤 했었다.

그렇게 카메라를 챙겨 도착한 여행지에는 으레 커다란 사진기와 샘플 사진들을 목에 걸고 손님을 기다리는 수동카메라 기사들이 있었다. 가족 사진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예의 그 영업멘트를 거는 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덜컥 내가 이 기사님과 계약(?)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슬슬 피해 다니긴 했지만. 부모님은 기사님의 끈질긴 영업에도 끄떡없이 우리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셨는데 그때마다 나와 형제들은 옹기종기 모여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그러면 멀찍이서 아버지가 좌로 이클릭, 우로 일클릭, 구도를 조정해주시는 게 일련의 순서. 그리고 그마저도 완벽히 준비가 되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필름 한방 한방이 귀했던 시기라서 그랬나, 찍어주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꽤나 긴장되는 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형제가 많았던 우리 가족이 다 사진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어주는 분들은 항상 아버지의 세팅보다 두어 걸음 더 뒤로 물러나 사진을 찍는 일들이 잦았다. 찍습니다, 하나, 둘, 셋, 김치. 그러면 김치이이, 하고 이를 활짝 벌리는 우리. 그리고 셋에서 김치로 넘어가는 순간마다 엄마가 추임새처럼 넣던 말. 다들 눈 번쩍 뜨고, 라는.

나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눈을 잘 감는 편이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은 후 며칠 후에 결과물을 확인하는 당시의 현상기술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모두가 잘 나온 사진에 나만 눈을 감고 있는 경우가 꽤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그렇다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엄마가, 또 어떨 때는 형이, 또 어떨 때는 누나가 그랬다.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만의 일도 아니었다. 어떨 때는 호랑이처럼 무서웠던 고모부가 참 모양 빠지게 나온 사진도 있었다. 눈만 감았으면 양반이게. 무얼 드시는 중에 찍혔는지 눈이 반쯤 뒤집히고 입이 삐뚤어져있는 것도 있다. 초점도 다 흐트러지고 구석에는 빨갛게 색이 나간 사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진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갖고 있는 것은 그때 그만큼 사진이 귀했기 때문이었다고 하셨다. 이제 잘 나온 사진 많으니까 이건 버릴게요? 하면 아서라, 하고 내 손을 막으시는 엄마. 이런 게 좋은 거야. 지금 세상에 이런 게 어딨냐며.

하긴 정말 세상이 참 많이 좋아지긴 했다. 언제부턴가 휴대폰에 달린 사진기로 필름 걱정 없이 마음 껏 사진을 찍고, 그 중에 잘 나온 것들만 골라 소장할 수 있는 세상 아닌가. 셀카를 백번 찍어 백번 다 눈을 감았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백 한 번째에 감지 않는 사진을 찍으면 되는데. 거기에다가 포토샵, 사진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그 가능성은 더 무한해진다. 이 세상 모든 것 중 포샵이 불가능한 것은 없다. 고등학생의 주민등록증에서 직장인의 사원증까지. 눈 좀 크게 해주시고, 턱을 좀 깎아주세요, 라는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사진관이 되었고. 머리를 자르고 면도를 하고 화장을 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곳이 사진관이 되었다.

그리고 내 말은, 그게 한국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뉴질랜드에서라면 당신이 한국에서 쌓아온 그 믿음은 잠시 내려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마도 20년 전 사진관에서 복불복 증명사진을 찍던 그 때로 돌아갈 참이니까. 역시 지상낙원, 포샵은 고사하고 그야말로 사진에 있어서도 티 없이 맑은 원판을 선호하는 곳이 바로 사진 청정구역을 자랑하는 곳이 뉴질랜드다.

이를테면 비자 신청을 위해서 증명사진을 찍는다 하자. 꼼꼼한 당신이라면 정확한 판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우선 이민성에서 확인을 한 후, 근처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기로 당신은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사진 찍는 날이 늘 그렇듯 급하게 나오느라 오늘 내 상태가 최상은 아니지만 카메라 앞에 앉으며 생각할 것이다. 괜찮다. 그래도 조금 보정은 해줄 테니까. 하지만 그런 당신의 기대 따윈 양에게 줘버린 듯 당신의 손에 들린 결과물은 놀라우리만큼 순수한 자연의 상태 그대로일 것이다. 뻗친 머리도, 이마에 달라붙은 잔머리도, 거뭇거뭇한 수염과 피부트러블. 이 몰골로 비자 신청하면 첫인상에서 탈락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엄습하는 그런 비주얼을, 마치 맑은 물로 씻어낸 양 더 선명하게 드러낸 사진. 그리고 그보다 더 맑은 사진관 주인의 얼굴.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내 소명을 다 했다는 확고한 믿음이 아니고서야 지을 수 없는.

아니면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을 신청하러 가는 당신. 가볍게 서류만 작성하고 오겠다는 생각으로 모자에 후드티, 그야말로 집 앞 마실 가는 복장으로 운전면허 신청 장소에 도착해 신청서를 제출하는 당신. 계산을 마치고 집에 가야지 하는 당신에게 직원이 말한다. 저 쪽에서 면허증 사진을 찍을게요. 지금이요? 네. 마치 지금 사진을 찍지 않으면 모든 신청이 무효로 될 것 같은 느낌에 당신은 부랴부랴 모자 안에 찌고 있던 떡반죽 같은 머리를 꺼내어 얼굴에 얹어놓는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찰칵. 이상하게 눈을 감은 것 같은 기분인 걸. 찍은 사진을 보여주지도 않는 친절한 서비스. 불안한 마음에 잘 나왔냐고 물어보는 당신에게 직원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줄 지 모른다. 그럼요, 아주 잘 나왔어요, 하면서. 그리고 이윽고 당신의 집으로 배달된 면허증에서 비로소 마주하는 그 아주 잘 나온 사진. 눈이 반쯤 감긴, 흰자위가 희번득하게 아주 잘 나온 이 사진이 정녕 내 면허증인가. 마치 20년 전 한국에서나 겪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다행인 건 그런 탈주자를 연상케 하는 비자 신청서와 안면장애를 연상케 하는 면허증이 뉴질랜드의 일상과 비자 처리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시간에 쫓겨 낸 탈주자 증명사진이 가뿐히 통과되어 돌아오는 것에 놀라고, 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이 뒤집힌 운전면허증에 순순히 신분확인을 해주는 것을 보면, 과연 얘네가 내 사진을 보기는 하는 건가? 실제 내 사진이 아닌 아무 사진을 갖다 놔도 별탈 없이 비자도 나오고 면허증도 나오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내가 한국에서 찍은 사진들이 오히려 이들에게는 낯설고 어색한 풍경일지도 모른다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진을 왜 굳이 지지고 볶아서 더 멋있고 예쁘게 만드냐고 되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마치 엄마가 소중히 간직하시는 그 색 나간 사진처럼, 이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기억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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