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살이하는 한국 사람에게 소주만큼 그리운 이름도 없겠지만, 고향에서 만들어져 산 건너 물 건너 도착한 소주의 가격표를 보며 뜨악한 경험 또한 타향살이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어 보았으리라. 지갑은 가볍고 한잔 마신 기분은 내고 싶은 그런 밤, 편의점에서 라면 두 봉지, 소주 두 병 사서 챙강 챙강 소리 나는 비닐 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고국의 추억은 차가운 냉장고 바람과 함께 온데간데 사라지고 남은 것은 딱 세 가지. 고민하는 나, 얇은 지갑과 혼자 남은 이 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것은 꼭 연인들에게 국한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향수병도 가격 순이 아닌 법. 이름도 다르고 맛도 다르지만 뉴질랜드 로컬 맥주들로도 우리는 충분히 오늘 그리움을 이겨낼 수 있으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개의 나라들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술이 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술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것은 바로 국내산과 수입산으로, 거의 모든 경우에는 국내산이 가성비에서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알콜 도수가 낮으면 낮을수록 싸구려 술인 양 취급하는 사람들도 적잖이 있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가격이 싸면 쌀 수록 그 술잔의 크기가 더 관대하다는 점, 비싼 술일수록 그 술잔의 크기가 코딱지의 사이즈로 수렴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또한 나쁠 것 없는 것이다. 한 병을 먹어서 15%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소주의 전략도 좋지만 5% 맥주 세 병을 먹어서 15%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맥주의 전략 또한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맥주를 선택할 시 옵션으로 따라오는 시원한 탄산은 고려해보라. 비슷한 느낌을 내기 위해 소주에 소다수를 섞어서 칵테일을 만드는 그 수고와 비용을 고려한다면 이건 정우성급 치명적인 매력포인트다. 마지막 그 어감의 차이.

‘어젯밤에 맥주 한잔 하고 잤어요’ 와,

‘어젯밤에 소주 한잔 하고 잤어요’ 가.

당신의 이미지에 끼치는 작지만 확실한 영향을 고려해 보라. 자기 전 한잔의 맥주는 쉽게 용서가 되지만 자기 전 한잔의 소주는 용서가 힘든 것이 인지상정. 맥주란 그런 것이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눈 감고 넘어가는 하루. 맞서지 않아도 일상의 빡빡함이 알아서 슬쩍 비켜가는 것 같은 느낌.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디 던졌는데 터져버린 사람들의 웃음보 같은 것. 어, 웃기려고 한 말 아닌데? 멍 때리고 있었을 뿐인데 사색을 좋아하시나 봐요, 하고 긍정적인 평가가 돌아오는 소개팅 같은 것. 예?

아무튼,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외로운 밤에는 당신의 국가를 막론하고 국내 맥주 한잔이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국 생각에 친구 생각에 그리운 밤에는 가볍게 맥주 한잔을 하도록 하자. 뭐니뭐니해도 싸고, 가볍고, 부담 없을뿐더러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물론 독일 수입 정통 필스너를 찾는다거나 메이드 인 아일랜드 스타우트를 고르는 것도 가능하다. 가능은 하나, 그 돈에 그 마인드라면 차라리 친구들 다 불러 소주를 사 먹는 걸 고려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이번 글의 의도는 최소한의 투자로 행복한 밤을 보내는 것. 부어라 마셔라, 알코올을 향해 온 몸을 던지는 게 목적이 아니라 요새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마따나,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니까.

따라서 만약 한국에서라면 내가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맥주를 마실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볍게 저녁에 한잔, 사람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머릿속을 스쳐가는 건 카스, 하이트 그리고 오비라거 정도일 것이다. 자, 뉴질랜드에서도 역시 그쯤에서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집에 남아있는 소주가 있다면 소맥으로도 연결할 수 있으리란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지만, 그보다 우선 중요한 건 뉴질랜드의 카스, 하이트 그리고 오비라거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지. 그래서 소개한다. 뉴질랜드에 온다면 반드시 알아둬야 하는 뉴질랜드 대표 서민 라거 삼총사. 저렴한 간밤의 맥주 일 잔의 합리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뿐 아니라, 보다 정확하고 깔끔한 소셜미디어 포스팅을 위한 알짜 정보를 제공한다. 그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1. 스파이츠 골드 메달 에일 (Speight’s Gold Medal Ale)
  2. 투이 이스트 인디아 페일 에일 (Tui East India Pale Ale)
  3. 스타인라거 (Steinlager)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논쟁이 카스와 하이트, 오비라거를 놓고 어떤 것이 더 프리미엄인가를 따지는 것이라는 한국속담은 여기에서도 적용된다. 가격면에서는 스타인라거가 살짝 비싼 편이지만 이 세 맥주의 품질은 그야말로 도찐개찐. 만약 뉴질랜드에서 처음 맥주를 사 보는 사람이라면 뉴질랜드의 맥주가격이 꽤 있음에 놀랄 수도 있는데, 맞다. 뉴질랜드는 결코 술값이 싼 나라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뉴질랜드산 와인들이 저렴해 보일 수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에서 마시는 뉴질랜드 와인 가격을 감안했을 때 얻어지는 반사이익일 뿐이지 와인과 안주를 마음껏 먹는다면 그 저녁 값은 정말 만만치 않게 나올 정도니까. 물론 한국의 맥주 값도 동남아 등의 나라들에 비교한다면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는 가격이지만, 한국에는 반칙 중의 반칙, 맥주의 반값 정도밖에 되지 않는 국민주, 소주가 있으니… 한국에서 외식으로 삼겹살에 소주를 배부르게 구워먹는 데 드는 비용과 여기서 스테이크에 와인을 배부르게 먹는 가격을 비교하면, 아니, 그만, 비교하지마, 그건 너무 슬프니까… 아, 삼겹살에 소주 원 없이 먹어봤으면.

 

(2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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