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질랜드로 영어 연수를 왔다. 그것은 도피식 유학에 가까웠었다. 당시 친한 교회 누나가 뉴질랜드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그 누나가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뉴질랜드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까지 한번도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던 그는, 비행기도 한번 타 보고 싶고 한국 밖 세상이 궁금했던 터라 그렇게 뉴질랜드로 향했다.

그는 지금 Invis-Able이란 자신의 브랜드 이름으로 당당히 뉴질랜드 옷 가게에 그의 옷을 걸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 Marc Jun(전원석) 씨 이야기다.

뉴질랜드 

안녕하세요? 전원석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뉴질랜드에 와서 영어를 배우다, 무언가 해외에서 학위를 따면 경력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저의 처음 계획은 비지니스 디플로마 이후 호주로 편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그 디플로마 이후에는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선언하셨고 그래서 뉴질랜드에서 영주권을 따고 공부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게되었습니다.

뉴질랜드에 살다 보니 이민법은 참 자주 바뀌었고 또 그때 당시에는 잡서치 비자가 6개월짜리였습니다. 구직 기간도 짧고 또 아시안은 키위회사에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다는 큰 “현실”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레벨 7 같은 더 높은 수준의 공부를 하면 영주권신청을 바로 할 수 있는 길이 생겼는데, 영주권을 위해 공부를 더 할지 말지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때 감사하게도 마음 가운데 강한 물음이 왔었어요! ‘전원석! 너 지금 쉬운 선택하면 평생 쉬운 선택만 좆고 쉬운 길만 따라가는 삶을 살게 될 거야’라고. 물론 쉬운 길은 돈을 더 내고 공부를 하는 것이었고 어려운 길은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키위회사에 취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호텔 쪽으로 영주권을 딴 사례들이 조금씩 있던 때였고 또 제가 공부했던 디플로마 과목에 호텔 관련 과목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저는 호텔 쪽으로 일을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날마다 호텔들을 돌아다니며 어플리케이션 폼을 받아서 작성하고 또 제 이력서를 첨부해서 다 넣고 집에 오면 그렇게 마음이 뿌듯했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한 호텔에서 연락이 와서 2번의 인터뷰 이후에 호텔에서 porter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었습니다.

호텔에서 2년 2개월 정도 일을 했었는데, Concierge로 야간근무를 했었습니다. 밤시간이라 저까지 3명이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1명의 부매니저가 비자문제로 5주 정도 일을 못하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희 2명이 3명의 일을 했어야 했던 때가 기억납니다. 당시 그 호텔은 저의 아르바이트 이후의 첫 직장이었기에 저는 목숨을 바쳐 일하겠다고 시작 때는 이야기했었는데 아무래도 제 몫의 일을 다하고 다른 한 명의 일을 분담해서 하려니 같은 돈을 받고 일은 더 많아졌다는 생각에 심술과 불평이 났었습니다. 또 남의 일을 하려면 그 사람의 일을 배워서 해야 되기 때문에 더 짜증이 났었지요. 적응이 되어 편하게 일하던 환경에 더 많은 일들을 추가로 하게 되었었으니깐요. 그러다가 5주가 지나고 비자문제가 있던 사람은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하는 친구들이 아프다고 병가를 내고 안 올 때에는 저는 밤근무가 끝나고 더블 쉬프트를 하거나 도와주고 회사에서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때가 잦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억지로 배웠던 그 친구의 일들이 저의 능력이 되었고 또 회사에도 필요한 일손이 되었었지요. 그리고 그것이 저의 호텔 매니저로의 승진, 그리고 영주권 취득에 큰 도움이 되었었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패션 디자인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패션에 관심이 많고 옷과 패션용품들을 사고파는 일을 오랜 기간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제가 다루던 옷들에 대해 이 부분은 이렇게 이 원단으로 바꾸면 예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내가 패션디자인을 공부해야 되겠다 라는 생각까지 들지는 않았었습니다. 사실 제가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코스타라는 교회 수련회 캠프를 통해 기도하던 가운데였습니다. 기도하던 나의 마음 가운데 내가 어떤 신문에 패션디자이너로써 내가 만든 옷을 들고 나오는 모습이 그림처럼 강하게 각인되었거든요. 우리가 무언가 생각 중에 꿈을 생각하고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듯 말이에요. 근데 그때의 그 신문에 보이는 저의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고 그래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해야 되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었습니다.

 더니든의 오타고폴리텍에서 3년간의 의상 디자인 공부를 마친 후 2년 정도 옷에 프린트를 전문적으로 하는 프린팅 스튜디오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처음에 모든 패션디자인 학생들이 원하듯 저도 이 나라 의류디자인 회사에서 경력을 쌓으려고 시도했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디자인 쪽 일이 아니면 일을 안 하려고 했지만 3개월 이후에는 계속 쉬며 기다리는 것보다는 그래도 어디든 일을 시작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즈음 감사하게도 옷에 프린트를 하는 업체에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회사는 뉴질랜드의 여러 의류 브랜드(Kate Sylvester, Stolen Girlfriends club, etc)들의 프린트를 담당하며 여러 회사 유니폼에 프린트를 하던 업체였습니다. 이미지나 조금 복잡한 색상의 파일을 보내주면 screen print보다 가벼운 프린트로 재현해서 잉크를 옷에다 직접 프린트하는 Digital garment printing이라는 아직은 뉴질랜드에서는 조금 생소한 프린트 회사였습니다.

저는 패션디자인 공부를 하며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데는 참 재미를 느끼며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Adobe Program 같은 컴퓨터로 디자인하는 프로그램들을 다루는 데는 너무 취약하였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패션디자인을 하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print studio 일을 하며 저의 취약점인 포토샾이나 일러스트레이터를 다룰 수 있게 되고 또한 여러 패션디자이너들의 프린트 공정과 색상 또는 프린트 위치, 그리고 많은 테스트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 또한 저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2년 2개월 정도 일했었는데 저는 패션디자인을 공부할 때부터 제 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제가 입고 싶어 하는 스타일의 남자 옷을 살 곳이 많이 없어서 내가 원하는 스타일에 옷을 제작해서 입고 싶었어요.

제가 프린트 회사에 일하면서 나는 10년 뒤에 무엇을 하고 있으면 행복할까?를 생각했을 때 제가 디자인한 물건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sales를 다니는 게 너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5년 뒤에는 10년 뒤의 나를 위해 무얼 하고 있어야 되나를 생각했을 때 제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거나 어느 정도 기초가 되는 브랜딩을 뉴질랜드 내에서 만들어 놔야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10~20년 뒤에 갑자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제 옷 사업을 한다는 것은 너무 risk가 크기에 그때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제 사업이 행여나 잘되지 않거나 고생을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해보자! 라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고 제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urope

더니든에는 패션 week이 매년 열립니다. 그 기간 중에 Emerging Designer show가 있는데 여기에는 전세계에서 많은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이 자신들의 작품이나 옷들을 들고 나옵니다. 그때에 만났던 한국 디자이너 형이 계셨는데 그분을 통해서 밀라노나 프랑스에서 그 분의 Fashion Tradeshow (전세계에 boutique store buyer들과 세계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한곳에 모여 wholesale 거래를 하는 show)를 도와드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 트레이드 쇼들을 통해서 세계의 많은 디자이너들이 전세계 곳곳의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통해 물건이 전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 트레이드 쇼에서 제가 showroom assistant로써 도와드리면서 너무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그때를 통해 제가 하고 싶은 분야가 아닌가 많이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 외에도 그 트레이드쇼를 도와드리며 유럽을 여행하고 또 졸업 직후에 핀란드에 교환학생으로 연결되어서 3달 정도 핀란드에서 공부를 하며 여행을 다녔었습니다. 그때 다녔던 유럽들은 참 지금도 귀중하고 제 디자인의 안목이나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배우는데 좋은 역할을 했습니다.  

 

Invis-Able

Invis-Able이란 Invisible이라는 단어의 ible를 Able로 바꾼 저의 브랜드 명입니다. 저는 패션을 공부할 때부터 보이지 않는 것에서 영감 얻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단어, 마음, 생각, 경험 등등. 이런 것들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생각과 또는 견해를 가지고 있고 또 저런 것들을 깊이 생각해보다 보면 또 다른 배움을 얻게 되면서 그것들을 옷으로 표현해보는 재미가 있더라구요.

제가 만든 옷들은 ‘What makes me happy?’에서 시작했는데 옷, 돈, 차, 인간관계, 꿈 등등 여러 가지가 제가 살며 생각할 때 나를 행복하게 했었던 것들입니다. 옷이나 신발들은 새 것이었을 때는 멋졌는데 지나고 나니 닳고 그런 멋의 느낌이 안 살고 새로운 유행이나 멋진 것들이 눈에 보이고, 차는 멋지고 비싼 차를 샀는데 밖에 세워두고 불안해서 밤잠설치며 마음 졸이고 또 비싼 insurance 가격을 내기도하고.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았던 친구나 사람들에게도 때론 등돌림이나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계속 쌓아왔던 능력과 career들은 가끔 우리를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목 조인다거나, 발목을 잡았던 것도 같아요. 그래서 그냥 우리를 행복하게 하던 것들이 지속적이지 못하고 되려 우릴 흔들어 놓는다는 것에, 그것들이 참 ‘가짜행복’ 같다.. 라는 생각에 머릿속에 ‘WHAT FAKES ME HAPPY’가 꽝꽝꽝!! 하고 제 머리에 강하게 각인이 되서 그걸 바탕으로 프린트나 디테일들에 FAKE한 detail들이라든지 이런저런 비밀들을 숨겨놓는 숨바꼭질 같은 옷들을 디자인했습니다. 그로 인해 제가 Fake처럼 장난쳐 놓은 것들로 Happy하게 입는 사람들이 즐기길 바랬거든요 : )

저는 저의 옷에 기능성을 추구합니다. 한 가지보다는 한 가지 이상의 가치가 옷에 있을 때 조금 더 흥미를 느끼고 또 저는 제 옷에 그런 재미를 만들고 스토리를 입히는 게 저의 특징이라 생각합니다. 특이하고 멋진 프린트 보다는 보통 우리가 생각해 왔던 옷의 부분 부분들이 생각과는 다른 모양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 되게 해보는 것에 열정과 희열을 느끼는 편이구요. 이번 옷들은 또 보통 양면이 되는 옷이라면 반대편은 비슷한 느낌인데 양방향이 전혀 다른 느낌의 원단이나 디자인이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입으시는 분들의 방향대로 스타일링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또 제가 제 브랜드를 시작한 이유가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제가 입고 싶은 옷을 살 곳이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또는 뉴질랜드에서 남자들이 옷 사 입을 곳이 없어서 나름 그것이 이 나라의 Gap in the market이 아닌가 생각해서 시작한 것도 있구요. 저는 제가 제 옷을 많이 팔아서 돈을 많이 벌고 비싼 옷을 사서 입는 것보다 그냥 제가 만든 옷을 입고 다니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만들고 입을 옷에 책임감을 가지고 만드는 것 같아요. 원단도 좋은 것을 쓰고 공장도 좋은 곳을 선정해서 훌륭한 마감으로 나온 옷들을 입고 싶기에, 그저 가격만 비싼 옷이 아니라 정말 비싸다면 비싼 이유가 있는 정직한 옷을 만들고 싶습니다.

 제 옷은 유니섹스 스타일인데 일단 옷을 남녀 공용으로 하게 된 계기는 제가 공부할 때 교수님들이 제가 만들었던 똑 같은 옷을 여성복으로 만들어 줄 수 있냐는 요청들이 간간히 있었습니다. 저는 남성스러운 옷을 좋아하지만 귀염스러운 옷도 좋아하는 편이라 그 중간에 있는 옷들을 만드는 거 같아요. 그리고 아무렴 패션이라는 것에 남성보다는 여자분들이 더욱 관심이 많고 수요가 많기 때문에 저의 브랜드가 유지되는 데에 여성 고객들을 찾는 점도 중요했구요.

이번에 나온 옷들은 225불에서~615불 정도까지 가격대며 모자는 75불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제작

저는 옷을 만드는 공정을 한국에서 하고 있는데요. 뉴질랜드 최저임금이 높은 편이라 이 나라에서 생산을 하고 뉴질랜드 시장에 있는 옷들과 경쟁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 판단했어요. 중국에서 수입한 이미 인지도 있는 브랜드들은 가격도 싸고 인지도도 있고, 또 뉴질랜드에서 만든 유명한 옷들은 가격이 엄청 높고 그런 뉴질랜드 마켓에서, 제가 신생브랜드로 살아남는다는 부분에서 가격경쟁을 하기가 힘들 거 같았어요.

또 한국에서 옷을 만들게 되며 운이 좋게도 한국에서 파리로 수출하는 브랜드들이나 한국제일모직의 옷을 담당하는 공장과 연결되게 되어서 비록 저의 공임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옷의 마감도나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제가 제 옷 입고 다니다 보면 많은 브랜드 owner나 디자이너들이 물건의 완성도가 좋아서 공정에 대해 많이들 물어봅니다. 지금 패션업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항상 좋은 factory나 만드는 업체를 찾기 때문에 그분들이 그렇게 물어보신다는 건 옷의 완성도를 증명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제가 이 브랜드를 시작하려 할 때 뉴질랜드에서 유명한 원단도매가게에 2017년 말에 갔었는데 2018 겨울 신상이라며 원단을 갖다 놓았는데, 그 원단은 2014년도 제가 졸업작품을 할 때 한국에서 사왔던 원단이었고 또 제가 구매했던 가격보다 2~3배는 비쌌어요. 또 이 나라의 원단 업체들이 적다 보니 뉴질랜드 내의 여러 브랜드들이 같은 원단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제가 한국에서 원단을 찾아 사용한다는 것이 저의 브랜드의 차이점이자 강점으로써도 작용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이런 3가지들 이유 정도 때문에 한국에서 공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판매

Invis-Able은 이제 막 시작한 신생브랜드입니다. 3달 정도 전에 물건을 만들어 들여 와서 여기저기 옷 가게에 wholesale로 제 물건을 넣어보려고 룩북들을 이메일로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겨울 옷을 늦게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렇게 가게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 또한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감사했던 건 제가 만든 옷을 입고 다닐 때마다 많은 키위들이나 옷 가게들에서 제가 입은 옷의 구매처라든지 브랜드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옷들은 가게에 입점되어서 판매되는 방식과 저의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은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모르는 분이 제가 더니든에서 팝업스토어를 준비 중일 때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셨더라구요. 그렇게 오클랜드로 역배송해서 참 뿌듯했었습니다 : )

그리고 사실 판매의 시작은 지난 7월 9일에 했던 폰손비센트럴에서의 팝업스토어입니다. 신생브랜드로써 가게를 임대하거나 얻기에는 위험부담이 크기에, 단기간 공간을 빌려서 운영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아직 인지도도 없고 가격도 싸지 않은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구매도 해주시고 좋은 피드백도 얻게 되어서 용기를 얻고 브랜드에 대해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 폰손비 팝업을 통해 사람들의 다양한 선호도도 발견하게 되어 다음 옷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폰손비 팝업을 하던 중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여러 업체나 디자이너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벤트를 통해서 오클랜드 시내에 제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좋은 성과도 있었습니다.

폰손비 팝업 이후 바로 다음 팝업인 더니든에서 팝업을 했습니다 더니든은 제가 공부했던 도시이기도 하고 또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가격이 오클랜드보다 저렴합니다. GUILD라는 이 나라 local designer를 지원하는 장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더니든에서의 팝업에서도 많은 기쁨들이 있었습니다. 더니든 팝업을 진행하던 중 코트를 구매했던 한 옷 가게의 점원이, 구매 후 가게에서 일하며 제 브랜드 옷을 입었을 때에 그 옷 가게 오너가 제 옷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그 가게에 와 비지니스 미팅을 하게 되고 미팅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직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그 가게에 입점이 된다면 다른 지역의 옷 가게로도 입점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저는 뉴질랜드 Local 가게들에 입점하고 또는 제가 경험했던 해외의 Fashion Tradeshow에 제 물건을 sales하러 다니고 싶습니다. 나아가 역수출을 통해 뉴질랜드를 패션으로 알릴 수 있는 브랜드가 되면 좋겠고 또 더욱 커질 수 있다면 빈민국에 옷 만들 수 있는 공장을 만들어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세상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입힐 수 있는 브랜드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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